도시의 첫인상은 지독한 고요함이었습니다. 단순히 소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리란 소리는 다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새조차 날지 않았습니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방문단은 지난 봄 이곳, 텔스쿠프를 방문하였습니다. 다에시(또는 다에쉬, IS)의 거점지인 모술에서 불과 32km 떨어져 있으며, 최전선 지역에서 2km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텔스쿠프는 버려진 도시입니다. 2014년 8월, 다에시가 텔스쿠프를 점령한 당일 밤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1만 2천여 명의 주민들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알코쉬(Alqosh)나 쿠르드 지역의 에르빌(Erbil)에 있는 난민촌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ACN 방문단은 43도의 더위를 피해 뼈대만 남은 건물 아래 그늘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의 주택들, 구멍 뚫린 벽 앞의 도색이 벗겨지고 망가진 자동차들, 이 모든 것은 몇 주 전 텔스쿠프에서 얼마나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미 공군의 병력 지원으로 역습이 있기 전이었던 지난 5월 3일, 수백 명의 다에시 대원들이 차량 폭탄과 자살 폭탄 등으로 쿠르드전선까지 진격하였습니다. 탈환 과정에서 쿠르드 반군 3명과 31세 미 특공대원 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쿠르디스탄 민병대 페시메르가(Peshmerga)의 비공식 보고에 따르면, 다에시 대원 5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ACN 방문단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 위해 텔스쿠프로부터 16km 거리에 위치한 알코쉬를 찾아갔습니다. 알코쉬는 니네베 평원의 마지막 남은 그리스도인 도시이며, 다에시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적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칼데아 가톨릭교회 알코쉬교구장 미카 폴라 마그다시(Mikha Pola Maqdassi) 주교님께서는 500가구의 난민가정을 돌보십니다. 외곽에서 거주하는 이들은 1200여 가구로, 이곳 교회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희망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마그다시 주교님께서는 폐허가 된 이 세상 속에서 젊은이들이 낙담하고 있다며 우려하셨습니다.
방문단은 텔스쿠프의 한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아래 유리 조각이 밟히며 침묵이 잠시 깨어집니다.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미러 선글라스를 끼고 총으로 무장한 페시메르가 대원들은 천장 위, 깨진 창문 앞, 종탑 등에서 시야를 확보하며 방문단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ACN의 중동지역 파트너이신 안드르제(Andrej Halemba) 신부님과 함께 방문단은 성가대석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평화를 간청하며, 모두 충격과 슬픔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민병대 대장은 방문단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정중히 기다려주었습니다. 이후 식사초대를 권했으나 시간이 충분하지 않자 그는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가 다에시와 싸우는 것은 이 지역의 그리스도인 마을에서 남아있는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 2016.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