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는 테러리스트 집단에 납치되어 2년 동안 잡혀있었습니다. 최근 그녀는 탈출에 성공하여 헤어졌던 남편과 제회 하였습니다. 그동안 부부 사이에 있던 둘째 아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첫째 아이 외에도, 보코하람 치하에서 생긴 간난쟁이 아들과 함께 였습니다.
비트루스 자카리아(Bitrus Zachariah)씨, 부인 레베카(Rebecca) 가족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014년 8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집단, 보코하람이 이들의 고향에 끔찍한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이후 2015년 바가(Baga)에서 대량 살상을 저지르고 점령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레베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깊은 슬픔에 침잠된 것 같이 보입니다. 가드온 오바소지(Gideon Obasogie) 신부님께서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십니다. 신부님께서는 마두라이 교구,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책임자이시며, 역시 보코하람의 공격을 경험한 적이 있으시기 때문에 아픔과 함께 할 수 있으십니다. 레베카와 남편, 비트루스는 보코하람의 공격이 시작되자 3살, 1살 두 아들을 데리고 정신없이 정든 집을 떠났습니다. 레베카는 임신한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 후 열악한 환경으로 유산을 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들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도망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잡힐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레베카는 도저히 더 이상 달릴 수 없었고, 남편에게 제발 혼자라도 목숨을 살리라고 애원했습니다. 비트루스는 아내의 청을 받아들이고 홀로 수풀을 헤치고 달립니다. 보코하람의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했지만, 행운은 비트루스의 편이었고, 결국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비트루스는 정신없이 달리고 달리면서,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아내를 쳐다봅니다. 그의 눈빛은 회한과 미안함, 수치스러움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순간에 아내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괴롭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아내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몽고누(Mongonu)로 왔고, 반드시 가족을 다시 찾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다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이 살아있도록 해 주셨다면 말입니다. 그는 몽고누에서 15일 동안 바가 방향만을 바라보며 제발 부인이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 왔습니다. “저는 사람들마다 붙자고 혹시 아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트루스의 이야기
“저는 깊이 절망했습니다. 극심한 편두통, 고혈압에 시달렸어요. 다행이 군인 몇몇이 숙소를 마련해 주어서 나는 머리를 뉘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마이두구리(Maiduguri)로 갈 수 있도록 약간의 여비도 지급해 주었습니다. 저는 마이두구리에서 숙부를 만났어요. 숙부께서는 절대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셨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숙부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이 악몽과 같은 상황과 찢어지는 가슴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주어졌던 소중한 삶과 가족.. 저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제게 결코 극복할 수가 없는 경험이었어요.”
레베카의 이야기
“보코하람은 넘어져 있는 제가 다가와서 협박하며 말했어요. „…da mun kashe Mujin ki..da mun Sami lada….ama ton da Allah bai bari ba…ke da yaran ki sai ku je ku yi aikin Allah.” “우리가 당신 남편을 죽였다면 알라신으로부터 상을 받았을 텐데.. 아직 신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너와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가서 신께 봉사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는 장총으로 저를 내려쳤고 이 몇 개가 부서졌습니다.”
레베카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보코하람의 집단원들은 인질 중 남성들을 그 자리에게 죽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레베카와 두 아들을 차드 호수로 데려갑니다. 레베카는 두 아들을 데리고 물이 목까지 차는 호수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친친이라는 과자 몇 조각으로 연명하며 꼬박 6일을 걸었습니다. 가시밭의 한가운데 있는 크왈레람(Kwalleram)이라는 곳에 도착하였고, 설거지, 고추 다듬기, 오토바이 길 청소, 보코하람 군인들을 위한 식사 준비 등 허드렛일을 하며 53일 동안 그 곳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자, 제가 탈출할 것을 염려한 보코하람은 다시 저와 아이들을 데리고 차드의 구르바(Gurva)로 이동합니다. 그곳에서 저는 밭일을 하고 장작을 패며 70일 동안 머물렀어요. 구르바에는 보코하람 대원이 한 2천 명 정도 있었어요. ”
“사람들이 제 등에 69라는 숫자를 붙이더라고요. 틸마(Tilma)에 있을 때 일입니다. 저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요. 물어보지도 않았고요. 상품번호더군요. 저는 바게 구두마(Bage Guduma)라는 남자에게 팔려갔습니다. 55일 동안 그 남자에게 잡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한테 야자열매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저는 기어이 먹지 않았어요. 그게 하느님의 도움이셨나 봐요. 야자열매를 먹었다면 정신을 잃었을 거에요. 약품을 탄 거죠. 저는 매일 밤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이들의 배설물을 온몸에 발랐어요. 그놈이 절대 제 몸을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요. 그놈은 배설물이 싫어서 아들들에게 나를 구타하라고 시킬 때조차 나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더라구요. 저는 3주 동안 땅을 파는 일을 했어요. 지하수를 찾으라고 그들이 시킨 거죠. 그들은 매일 98번, 채찍질을 했어요. 저는 2주 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지요. 그들은 글쎄.. 둘째 호수에 던졌습니다. 산채로 말입니다.”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레베카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낍니다.
“보코하람은 저를 두 번째 남자인 말라에게 데려갔어요. 그들은 내게 그와 함께 잠자리를 하라고 강요했지요. 거부하자 그들은 저를 깊은 구덩이 속에 가두었어요.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갇혀 있었습니다. 말라는 이틀 후 녹초가 된 저를 강간하였습니다. 월경이 시작되지 않더군요.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통제가 구해서 한꺼번에 다량으로 삼켰어요. 뱃속의 아이를 지우고 싶을 뿐이었어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납치 된 후 종교지도자의 부인으로 살고 있던 한 여성이 제게 임신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이미 보코하람의 아이를 둘이나 낳은 상태였어요. 저는 견뎌 보기로 했습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요. 그러나 결코 쉽지 않았지요. 굶주림 때문에 죽음 직전에 놓였었죠. 출산도 혼자 했습니다. 홀로 고통을 견뎠지요. 도움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스스로 탯줄을 끊었습니다.”
“저는 병원에도 가 본지 못하고 어떤 의료지원도 못 받았지요. 보코하람은 제 아들에게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아들이라고 좋아했습니다. 여성은 남자아이를 낳을 목적으로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인 말라는 다른 지역에 있다가, 출산 6주 후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보코하람은 저를 또 다시 다른 남자에게 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레베카는 2년이 넘는 납치 기간 동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일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녀는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혔던 벤자민이라는 남자를 떠올립니다. 보코하람 대원들은 벤자민을 붙잡아 그 자리에서 다리를 부러트린 후 고통에 신음하는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레베카와 인질들은 매일 7~10시, 12~14시, 16~18시에 기도와 코란 봉독에 참석하였습니다. 거부하면 죽음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8~9살 짜리 어린 여자아이들을 강간하고 죽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드디어 악몽을 마감하다.
어느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보코하람 대원들이 대부분 다른 지역에 있을 때, 레베카는 보코하람 지휘관의 아내였던 여성 대원에게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아마 차드 근처의 작은 지역인 마이텔레(Maitele)로 갔습니다. 이후 레베카와 몇몇 인질들은 탈출을 감행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불분명하지만 나이지라아 국경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습니다. 물과 식량도 거의 없이 6일 동안 걸었습니다. 아픈 아들들을 데리고 걸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비가 쏟아졌고, 목을 축이고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안전한 곳에 갈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쉼 없이 걸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군과 니제르군이 주둔하는 지역인 디파(Diffa)에 도착하였습니다. 군인들은 아들을 치료해 주고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마침내 쉴 수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시간이 지나 많이 회복하여 기운을 차린 그녀를 나이지리아 군이 주둔하는 다마투루(Damaturu)에 데려다 줍니다. “군인들은 정말 친절하였습니다. 저는 덕분에 남편이 있는 마이두구리 시로 올 수 있었어요.” 레베카는 말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상처의 역사
레베카의 남편 비트루스는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그러나 침착하게 말하였니다. “제 아내를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꿈같았지요. 그러나 보코하람의 자식인 이브리힘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사실 겁이 납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요. 하느님께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는 뱀의 자식이 아닙니까!” 비투르스는 침통하게 말하였습니다. 레베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던 이 작은 이브라힘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도 이브라힘을 정부에 맡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아직 8달 밖에 되지 않았다고 너무 어리기 때문에 아직은 어렵다고 합니다. 레베카는 남편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받아들여 주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무력한 목소리로 “만약 남편이 자신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저는 카메룬의 부모님께로 갈 겁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비투르스와 그의 가족들은 마이두구리 가톨릭 교구에서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국내난민 5백여명이 머무는 난민촌이 있습니다. 올리버(Oliver Doeme )주교님께서는 이들을 돌보십니다. 사람들은 기도와 연대, 재정적 지원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어느 정도는 잊고 살아갑니다. 레베카의 가족은 도덕적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교구는 이들에게 생계지원을 하며, 의료품, 옷가지, 숙소와 이부가지 등 기본적인 생필품들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심리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상처와 아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낫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은 이제 놀랍게도 6살이 됩니다. 이 기적과 같은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게 될 것입니다. 레베카는 믿음을 잃지 않고 용기 내어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레베카는 진정 강인하고 놀라운 여성입니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은 2015년 나이지리아 프로젝트를 위해 50만 유로를 지원하였습니다. 2014년부터 보코하람의 피해자들을 위해 카메룬과 나이지리아에 난민 돕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