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그리고 27일,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프랑스 지부는 “2017 증인들의 밤”(NUIT DES TÉMOINS 2017)을 주최했습니다. 제9회 증인들의 밤은 니제르의 마리 카트린 킹보(Marie-Catherine Kingbo) 수녀님과 북한의 블롯(Blot) 신부님 그리고 시리아의 자크 무라드(Jacques Mourad) 신부님을 초청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파리, 랭스, 생딴느도레이, 모나코와 페르피냥에서 4천 명 이상이 증인들의 밤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시리아 가톨릭의 자크 무라드 신부님께서는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게 5개월 동안 납치 그리고 감금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대성당에서 울려퍼진 자크 무라드 신부님의 증언을 여러분께 전해 드립니다.
저는 이슬람 테러단체에게 인질로 잡혀 5개월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협박을 수없이 당했고, 본당 신자 250명이 납치되고 감금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풀려날 수 있었을까요? 저의 경험 중에 단한순간이라도 사랑을 위한 자리가 있었을까요?
저는 시리아 가톨릭 홈스(Homs) 대교구의 사제로, 2000년부터 알 카리아타인(Al-Qaryatayn)에서 사목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 5월 21일, 마스크를 쓰고 무장한 남자들이 제가 책임자로 있었던 마르 엘리안(Mar Elian) 수도원에 들이닥쳤습니다. 저는 당시 수도 청원자였던 부트로(Boutro)와 인질로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부트로와 저를 사막 한가운데에서 며칠 동안 자동차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후 다시 락까(Raqqa)로 끌고 가서 어느 욕실에 우리를 감금했습니다.
저는 낯선 길을 따라 락까로 끌려가면서 제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한 문장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되뇌였습니다. “나는 자유를 향한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이 문장으로 저는 주님 앞에 저 자신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의 현존과 묵주기도는 저의 영적 무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감금 8일째 되던 날, 검은 복장을 하고 마스크를 쓴 남자가 제가 갇혀 있던 욕실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의 눈빛에 경악했고, 속으로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이름을 묻고는 아랍어로 “앗살라무 알라이쿰”(신의 평화가 당신에)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슬람 사회는 이슬람 의무를 다하는 사람만이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하여, 이 인사를 비무슬림들에게 건네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로 취급합니다.
그는 저희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우리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서 왜 우리를 감금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놀라운 답변을 하였습니다. “영적 수련이라고 여기십시오!”
저와 부트로는 84일 동안 작은 욕실에 갇혀 있었습니다. 매일 누군가 들어왔고 저의 믿음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누군가 들어올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나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침묵과 친절, 이 두 가지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저를 참수하겠다고 협박했고, 심지어 처형 직전의 장면을 연출해 보이며 믿음을 버리라고 저를 압박하였습니다. 그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이 제게 울려 펴졌습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저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를 실천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 8월 4일, 다에시(IS)는 알 카리아타인을 장악했습니다. 팔미라(Palmyra)의 그리스도인 250여 명이 이튿날인 5일 새벽 인질로 잡혀 왔습니다. 우리는 바깥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고,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해 8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슬림 지도자가 제게 오더니 말했습니다. “당신이 자크 신부입니까? 저를 따라 오십시오. 당신 이야기에 귀가 다 따가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사막을 내달리더니 커다란 철문이 버티고 있는 곳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저희 교구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타나자 모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죽었다고만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기쁜 동시에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아서 다시 만난 것은 큰 기쁨이었으나 재회의 조건은 저희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20일 후인 2015년 9월 1일, 납치범들은 저와 신자들을 풀어주면서 당시 다에시(IS)가 장악하고 있던 알 카리아타인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알 카리아타인 밖으로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비록 완전한 자유의 몸은 아니었지만, 풀려났다는 사실은 기적과 같았습니다. 저는 진정 놀라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저와 신자들은 비공식적으로 성사를 거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며칠 후 한 형제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저와 신자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납치된 이후 처음으로 수도원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르 엘리안 수도원이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3일 후인 9월 9일, 마르 엘리안 수도원 축일을 기념하여 미사를 거행하면서 저는 불현듯 우리를 구하기 위해 수도원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10월 9일 저녁, 저는 문득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아침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도와준 어느 무슬림 청년 덕분에 알 카리아타인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성모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저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한, 여러 무슬림들이 제가 관문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감시관들은 저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천만다행으로 저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2015년 10월 10일, 저는 사막을 통과하여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흔한 단어 “자유”의 의미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유일한 이가 결코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시리아인 모두가 자유를 찾고 있습니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국가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죽음 직전 세계 곳곳에서 은신처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유를 갈망하여 살고자 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 불합리한 전쟁 앞에서 도저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찾아 헤매면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던 삶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에게 가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왕국의 대리,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정한 세상의 상징이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 것입니까? 언제까지 세상은 크고 작은 집단들로 갈라져 각자의 이익을 따라서만 움직일 것입니까?
제3차 세계대전의 두려움이 도처에서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기 제조에 대항하고, 세계의 전쟁, 특히 중동 지역의 전쟁에 원인을 제공한 강대국들에 대항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폭력을 끊을 자유의 혁명을 실현할 때입니다.
아울러 이슬람 공동체는 유럽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폭력과 테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침묵이야말로 현재 자행되고 있는 폭력 사태에 대해 공식적이고 공공연한 무언의 동의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여러 원조 기구들이 시리아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난민 캠프에는 자리가 부족하여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비를 피할 지붕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요청하시는 바는 가난한 이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받고 상처받은 이들, 아주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들,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는 이들과 함께할 것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시편 51장 다윗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전쟁을 속히 끝내야 합니다. 저와 신자들은 전쟁의 잔해로 뒤덮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이, 저희에게도 삶의 권리가 있습니다. 저희는 진정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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