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의 브라질 지부가 지난 8월 6일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의 날’을 주최하며 말리 출신 NGO 대표인 무사 디아바테(Moussa Diabate)를 초청하였습니다. 종교 자유에 대한 개인의 증언과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인 예수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면서 자신의 고향에서 겪었던 타종교에 대한 비관용과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움직이셨을 때 어떠한 기적 같은 희망이 일어나는 지 강조하며 이야기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도 바오로를 회심으로 이끄시어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난민들이 낯선 땅 브라질로 찾아왔습니다. 브라질 카리타스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돕고자 합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디아바테 대표는 아프리카 방언을 포함하여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큰 역할을 수행합니다.
사실 디아바테 대표는 그리스도인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본명은 모하메드로 사하라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투아레그 족 출신입니다. 그는 19명의 자녀를 둔 대가족에서 맏형이었고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였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수도 바마코로 유학길에 올라 그곳에서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친구는 당시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그를 혼자 사막에 남겨둔 채 떠나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활동하는 수녀들이 그를 발견하여 간호해 준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수녀들을 보면서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친구의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의 친구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를 죽임으로써 그를 돕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저는 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그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제 영혼도 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 친구와 의절한 가족들과 똑같은 입장이었죠. 저는 그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고 있어.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친구의 이 마지막 말이 디아바테 대표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나지 않자 그대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너를(자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지만,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곧 자신도 세례를 받기로 결심합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가족들이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었고 바마코에서 같이 살고 있던 그의 삼촌과 상의했습니다. 삼촌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모두 만나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삼촌이 고향으로 사람을 보내 미리 알렸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디아바테 대표가 찾아오자 그에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사실인지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그를 붙잡아 옷을 벗기고 채찍질을 하며 바닥에 끌고 돌아다녔습니다. 디아바테 대표의 몸에는 그때 생긴 흉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는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 신자였지만, 일찍이 믿음에 대한 시험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입으며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과 같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디아바테 대표의 가족들은 그를 나무에 묶으며 며칠까지 다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다면 죽게 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일 전날 밤 가족 중 한 명이 디아바테 대표에게 몰래 다가와 그를 풀어 주었습니다. 디아바테 대표가 자신의 가족을 본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는 간신히 옷가지를 챙겨 입고 바마코로 향했고,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벤치에 쓰러져 잠들었다고 합니다.
며칠 후 스위스 대사관의 초청장을 들고 디아바테 대표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당황하며 망명하라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스위스 대사관에서 그를 다시 찾아와 “당신의 삼촌이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망명해야 합니다.”라고 경고합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아직도 스위스 대사관에서 어떠한 경위로 그 사실을 전해 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의 삼촌이 캠퍼스를 찾아와 자신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사실이 퍼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단지 자신을 이끄시고 보호하시는 성령께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고 말합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새 이름과 생일을 받았습니다. 그의 새 이름은 평화와 화해를 뜻하는 ‘무사’이며, 그의 새로운 생일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1월 1일입니다. 디아바테 대표가 ACN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때입니다. 대사관에서 프랑스어로 된 ACN의 자료를 읽은 것입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그렇게 무사히 스위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누가 자신을 후원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익명으로 난민들을 돕는 자비로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마침내 스위스에서 세례를 받고 교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리로 돌아가서 고향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노라 결심했습니다. 그는 먼저 가족들과 멀리 떨어진 국경 지대로 가서 교사로 부임했습니다. 말리인들은 전통적으로 첫 월급을 모두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보냅니다. 디아바테 대표도 자신의 첫 월급을 모두 어머니에게 보냈고,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동봉합니다. 그는 가족들과 화해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보낸 돈을 돌려보내며 그리스도인이 된 그를 보느니 차라리 그의 시체를 보는 것이 낫다고 답장했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는 돌려보내진 돈을 아이들을 돕는 데 사용하였고, 지금도 수입의 상당수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2012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쿠데타로 말리에 내분이 심화되자 많은 해외 대사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디아바테 대표도 세네갈로 피난을 떠난 뒤 브라질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브라질 카리타스에서 난민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디아바테 대표는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NGO를 설립하여 난민들에게 포르투갈어를 가르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난민들을 위한 교육 지원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난민들은 교육을 통해 조국으로 돌아가서 평화를 위해 일할 것이며, 자신들의 삶을 재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편 디아바테 대표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그리스도교가 일치하지 못하고 서로 갈라진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해받았습니다. 우리 단체는 무슬림도 지원합니다. 저는 그들을 저의 부모님처럼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가 이웃 사랑의 크기보다 클 수 없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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