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생이 그린 젊은 시절과 나이 든 시절의 로메로 주교 (출처=ACN 자료사진)
지난 3월 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자 바오로 6세 교황과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을 위한 기적을 인정하는 교령에 서명했습니다. 오는 5월 19일 추기경 회의에서 시성식의 공식 장소와 날짜가 정해질 것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와 로메로 주교의 깊은 인연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7년 엘살바도르의 한 어린 신학생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는 로마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는 1943년 바티칸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습니다.
같은 해 로메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몬시뇰의 강의를 듣게 됩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몬티니 신부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즉위하고 젊은 로메로 신부는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San Salvador) 대교구의 주교로 임명됩니다. 다시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들은 나란히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산 살바도르 대교구의 보좌주교 로사 차베스 추기경은 자신의 동반자이자 친구였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에 대해 “스승이자 제자, 세상의 성인이자 말씀의 성인이신 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뜻깊은 일입니다!” 차베스 추기경은 로메로 주교 시성 소식에 기뻐하며 ACN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정권에 비폭력투쟁으로 맞서 저항하였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운동을 활발히 벌이며 사회적 복음을 실현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1980년 3월 그는 ‘천주의 섭리’ 병원 부속 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무장괴한들에게 살해당했고, 이어 25,000여 명이 참석한 그의 장례미사에서도 테러가 일어나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엘모소테 학살 기념비로 향하는 사람들 (출처=ACN 자료사진)
차베스 추기경은 로메로 주교의 시성은 엘살바도르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 엘살바도르에 희망을 품어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로메로 주교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분을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들어본 적도,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본 적도 없는 이들이 말입니다. 엘살바도르는 아주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많은 폭력을 경험했지요. 민주주의를 받아 들인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사회적 반목, 심각한 빈곤, 이민, 가족분열 등 수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엘살바도르인이 성인이 된다는 사실에 국민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평화가 정착하길 바랍니다.”
로메로 성인은 “빈자의 성인”이라고 불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우리는 그분께 기도를 청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며 그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십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로메로 주교의 발을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 (출처=ACN 자료사진)
로사 차베스 추기경은 청소년 시기에 엘살바도르의 “작은 신학교”에서 로메로 주교와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몇 년 후 로메로 주교의 보좌신부로 일하게 되어 함께 사목활동을 하며 점점 깊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저는 때때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곤 했지요. ‘하느님, 친애하는 친구 로메로 주교님은 성인이 되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추기경은 로메로 주교를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로메로 주교를 잃었을 때 그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산 미겔 신학교에는 로메로 주교의 친서와 가르침이 적힌 서적들이 보관되었습니다.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게 인간을 돕는 귀중한 자료들입니다. 우리는 이 자료들을 통해 로메로 주교의 성품과 관심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가장 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사제 교육에 매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로메로 주교는 신학생들을 교육하며 자주 자신이 어떻게 사제 소명을 알아차렸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하느님과 진정으로 만났던 순간이라고 회상하곤 했습니다.
로사 차베스 추기경 (출처=ACN 자료사진)
교황청 재단 ACN은 로메로 주교의 뜻을 받들어 엘살바도르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힘씁니다. 그리하여 산티아고 데 마리아 교구에 ‘오스카 로메로 주교 신학교’와 ‘빈자의 성 로메로 양성센터” 설립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내전 희생자 추모 성전, 당시 살해당한 이들의 신앙증언 기록물 보존 등 1980년대에 시작된 엘살바도르의 열악한 현실과 관련된 사업도 지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