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8개월째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 하르키우 총대주교 대리구의 바술리프 투차페츠(Vasylij Tuchapets) 주교는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본부를 방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남은 사람들과 함께함의 중요성, 전쟁이 사목활동에 미친 영향과 겨울을 맞이하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 전했다.
러시아 침공 첫째 날 새벽 5시, 투차페츠 주교는 러시아군이 하르키우를 폭격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교좌 성당으로 가는 길에 그는 공포에 떠는 사람들과 짐을 가지고 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도시의 대중교통은 운영이 중단되었고 주유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날 투차페츠 주교는 모든 사제는 본당에 남아 그들이 맡은 신자들 곁에 있을 것을 지시했다. 그리스 가톨릭 교구 사제 대다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교는 동시에 이들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돌봐야 했다.
어느 오후, 지역 청년들이 미사를 마치고 주교좌 성당을 나서는 투차페츠 주교를 찾아왔다. 성당에서 한번 도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었다. 청년들은 주교에게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투차페츠 주교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강복하실 것입니다. 사제가 도망간다면 모두가 패배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ACN 본부를 방문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 하르키우 총대주교 대리구의 바술리프 투차페츠 주교
(출처=ACN 자료사진)
다음 세대가 수확할 수 있도록 밭을 일구는 일
2014년에 설정된 하르키우 총대주교 대리구는 면적 84,000㎢로 오스트리아 정도의 크기이며 5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하르키우, 폴사바와 수미 3개 지역을 포함한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정교회 지역이었지만 옛 소련 체제를 거치며 대부분 세속화되었다. 투차페츠 주교는 초기 그리스 가톨릭 신자들은 하르키우의 대학교 졸업생들과 시베리아 망명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시작했지만, 현재 대다수의 신자들은 하르키우 내 본당들과의 교류로 신앙을 찾게 된 지역 주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우리의 일이 밭을 일구고 땅을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뒤에 오는 이들이 씨앗을 심고, 그 다음 세대는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1코린 3,6 참조).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투차페츠 주교는 전쟁으로 사목적 배려에 변화를 느꼈다. 많은 사람이 떠났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과 머물 곳을 청하며 이곳에 왔다. 매일 하르키우 주교좌 성당을 찾는 사람들은 꼭 인도적 지원 물품을 받으려고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품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주교는 현재 성당에 와서 기도하는 대부분은 전쟁 중에 처음 오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며, 오랫동안 동거를 해온 연인들이 혼인성사를 청하거나 아이들의 세례를 부탁해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어린이들도 여러 달 동안 집이나 지하실 또는 임시 거처에서 숨어 지내다가 성당에 나오곤 한다. 본당 수도자들과 교리교사들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게임 등의 각종 프로그램과 교리교육을 주 2회 제공하고 있다. 일부 어린이들은 이를 통해 처음으로 기도를 접하게 되었다. 투차페츠 주교는 안전상의 문제로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어린이들을 위한 만남의 시간을 계속해서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사목활동에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방학”이라는 여름캠프도 포함된다. 물론 이것은 ACN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전쟁 중에도 캠프가 잘 유지됨은 물론, 참여 인원도 증가했다.
본당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격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 주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힘이 병력 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주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주교좌 성당의 대성전은 인도적 지원 물품 보관 창고로 사용되고 있지만 소성전에서 매일 전례를 바치고 있다.
원조를 계속 필요로 하는 우크라이나의 겨울
전쟁 발발 직후 하르키우에 원조의 손길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제와 봉사자들은 점점 식량, 옷, 위생용품과 어린이용품 등의 분류에 능숙해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신속하게 나누어 줄 수 있었다. 여전히 매일 1,500~2,000명의 사람들이 지원 물품을 받기 위해 주교좌 성당을 찾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물품들을 한 번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품 배분 횟수가 주 3회에서 1회로 감소했다. 물품량이 줄었고, 겨울에 새로 도착하는 피란민들을 위해 비축해 놓기 위해서이다. 인근 마을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서 사람들이 도시로 거처를 구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투차페츠 주교는 하르키우 자체의 피해 복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사회기반시설도 운영되고 있지만,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폭격으로 많은 건물의 창문이 부서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처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다. 식량, 온열 기구, 의약품이 필요하며 특히 추운 날씨에는 계절 독감 등의 질병이 동반되기 때문에 의약품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주교는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며, 사람들이 일자리와 수입이 없어, 생필품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긴 시간 동안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ACN은 투차페츠 주교가 2014년 하르키우 총대주교 대리구의 주교로 임명된 후 방문한 첫 자선기구이다. 지금까지 하르키우 총대주교 대리구와 ACN은 주교좌 성당 및 다른 본당들, 사목센터와 사회기반시설 건축, 사제 및 수도자 지원, 교리교육, 어린이 및 청소년 활동 지원 등을 포함하여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해왔다.
투차페츠 주교는 ACN 후원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의 지지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공산 체제하에 80년 가까이 전교가 금지되어 있던 이곳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신앙의 부활을 위해서는 기도 공간, 교리교육, 사제와 신자들의 근접성과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르키우의 모든 사제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ACN 후원자 여러분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희를 도와주시길 희망합니다. 교회에 꼭 필요한 여러분의 사도직 활동에 주님께서 강복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