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재단 ACN은 2019 사순·부활 캠페인의 일환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여성 수도자들의 증언을 모았습니다. 여기에 카자흐스탄 수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43세의 베라 진코위스카 수녀는 카자흐스탄 쇼르탄디(Shortandy) 출신으로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마리아 수도회 소속입니다.
베라 수녀의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소련 시절 그는 KGB(소련국가보안위원회)와 협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루터교인 한 명, 침례교인 한 명과 함께 KGB로 끌려가 자녀를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 후 루터교인의 딸은 그녀의 대학이 있던 모스크바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침례교인의 아이도 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베라의 부모님은 첫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여자아이였습니다. 아이는 병원에서 다리가 부러졌고 폐렴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혈액형이 다른 피를 수혈받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베라의 부모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주님의 축복으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바로, 베라와 15분 늦게 태어난 남동생입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첫 아이와 같은 운명에 처할까 두려워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두 아이는 신앙 안에서 무사히 자랐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라는 수녀가 되고 남동생은 사제가 된 것입니다!
베라 수녀는 말합니다. “1990년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개혁 정책 이후, 처음으로 고향에 신부님께서 부임하셨어요. 신부님께서는 폴란드어로 미사를 집전하셨고, 저희는 신부님께 러시아어를 가르쳐드렸답니다. 저희는 하느님께 가는 길을 서서히 찾아 나갔습니다. 저는 15살 때 첫영성체를 모셨어요. 28년 전 성탄 때였네요.”
베라 수녀가 수도생활을 하기 전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마리아 수도회 수녀들이 베라 수녀의 고향에 2주 동안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베라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난생처음 수녀님들을 뵈었어요. 그분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소련 시절에 교사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전부 어리석고 무식하며 문맹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쁨에 가득 찬 수녀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외모를 꾸미지 않고 남편도 자식도 없지만 정말 기쁘고 행복해 보였어요. 참 인상적이었어요.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예쁜 옷도 입지 않고 가족도 없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분들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에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베라는 학업을 마치고 폴란드로 가 언어를 배운 후 이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우리 수도회에서는 카리스마에 따라 가난한 아이들을 돌봅니다. 저는 이 점에 몹시 끌렸어요. 정말 좋은 카리스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이 수도회에 입회하면 수녀님들이 카자흐스탄으로 활동하러 오실 것이라는 계획을 알게 되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남동생은 저를 지지해 주었어요. 당시에 남동생은 폴란드 신학교에 재학 중이었지요. 부모님도 기뻐하셨어요. 아버지는 혹시 KGB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셨지만, 영혼 깊이 기뻐하셨답니다. 사실, 수도원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 고민하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어요. 당시에 어머니께서 제가 수도원에 계속 살도록 응원해주셨어요. 저는 부모님과 남동생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신자가 아닌 친구들도, 제 결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를 존중해 주었어요. 제 결정을 반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베라 수녀의 가장 큰 소망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에 다니지 않던 시절에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12살 때 저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예수님을 만났고 소명을 찾았지요. 그리고 캄차카이(Kapshagay)에서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소명 중의 소명”을 발견한 것이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이렇게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카자흐스탄에 두 번째 수녀원이 설립된 후, 베라 수녀가 그곳에 파견될지는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본원에서 새로운 수녀원 설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캄차카이에 수녀원 설립이 결정되었지만 놀랍게도 베라 수녀가 아닌 다른 수녀 두 명이 파견되었습니다. 베라 수녀는 실망했지만 기도했습니다. ‘주님, 아이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녀님들이 아이들을 잘 돌보게 도와주십시오. 저는 겸손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그분들과 함께 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른 수녀님들께서 그곳에 가게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입국 비자 문제가 발생하였고, 베라 수녀는 한 달 동안 캄차카이에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후 계획이 수정되었고, 베라 수녀가 캄차카이에서 아이들을 돌본지 10년이 넘어갑니다. “제게 이 일들은 하느님께서 저를 원하시고 제 희생을 받아들이신다는 큰 표징입니다. 저는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ACN은 카자흐스탄 캄차카이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마리아 수도회 수녀들을 지원합니다. 성전과 숙소 건물 보수, 확장 및 시설 정비, 비자 문제 조정, 피정 준비 등을 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