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북부 사페(Sapë)지역의 사이먼 쿨리(Simon Kulli) 주교는 올해 사순·부활 캠페인의 일환으로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국제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알바니아 순교자들과 교회를 위한 희망의 증거에 대해 언급했다.
알바니아에서 그리스도교가 금지되었던 시대에 태어나셨는데요.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주교님의 가정에 어떻게 신앙의 전수가 이루어졌나요?
저는 52년 전, 공산주의 정권이 절정에 있을 때 알바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알바니아의 다른 모든 아이와 똑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산주의 아래에서 똑같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저는 알바니아에 신앙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신앙을 얻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조부모님께서 저를 데리고 가서 몰래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조부모님이 저에게 신앙을 전해 주신 것은 큰 기적이었습니다.
알바니아 북부 사페지역의 사이먼 쿨리 주교(출처=ACN 자료사진)
우리는 알바니아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이 천국이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배웠습니다. 정권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바깥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 독일, 미국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극심한 빈곤에도 정권은 모든 사람을 착취했습니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삶은 정말 고됐습니다. 우리는 믿음도, 그리스도도, 종교도 없이 자랐습니다.
주교님은 비밀리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앙도 비밀리에 전해졌습니까?
네, 조부모님께서 신앙을 전수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저희에게 주님의 기도, 성호경, 성모송과 같은 주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비밀리에, 가족들만 모인 곳에서였습니다. 학교에서나 친구들과는 신앙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부모님이 체포되었을 테니까요. 당시 정권은 흉포했고 성호경을 긋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식사 전에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할아버지가 빈 벽을 향해 성호경을 그으시곤 했는데,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할아버지는 벽 안에 십자가를 박아 넣으셨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주교님은 신부님께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네, 신부님이 아니라 마리아 칼레타(María Kaleta) 수녀님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성흔 수도회 소속 수녀님이셨는데, 저희는 그분께 모두 “이모”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비밀로 봉사하시던 연로한 수녀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수녀님은 수감된 신부님들로부터 성체를 받아서 가져오시곤 하셨습니다. 신부님들이 비밀리에 성찬례를 거행한 다음 수녀님에게 더러운 세탁물 속에 숨긴 성체를 건네주면, 수녀님은 병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이 세례는 공산주의 정권이 절정에 달했을 때, 주님께서 비밀리에 저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큰 선물이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더라면, 제 조부모님과 나머지 가족들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리아 칼레타 수녀(출처=ACN 자료사진)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박해라는 개념은 아득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주교님께서는 박해받은 피해자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교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수년간 옥고를 치룬 살아있는 “순교자”들을 다행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28년 동안 감옥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공산주의 아래 고통을 겪던 어린 시절에, 저는 마틴 트루시(Martin Trushi) 신부, 슈테펜 피스툴리(Shtjefen Pistulli) 신부, 미켈 콜리치(Mikel Kolici) 추기경, 게르그 바타(Gjergj Vata) 신부, 많은 예수회 신부들과 교구 사제들, 그리고 저를 큰 희망으로 채워준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수감되어 본 적은 없지만, 신앙이라는 중요한 삶의 가치를 빼앗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언은 저와 제 미래에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신앙이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성소를 식별하셨나요?
저의 성소는 본당에서 라틴어로 미사를 거행하는 연세가 많으신 신부님을 처음 뵌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알바니아에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후 첫 미사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성소를 느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감옥에서 보낸 세월 때문에 제단에서 몸을 굽힐 때 고통스러워하는 신부님을 보면서 제가 그 자리를 대신에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 사제 성소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제게 세례를 주신 마리아 수녀님께 이 부르심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2016년에 교회는 알바니아에서 38명의 순교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2024년에 또 다른 두 명의 순교자를 인정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증거가 오늘날 젊은 알바니아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까?
네, 테르툴리아누스가 말했듯이,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교의 씨앗입니다. 저는 순교자들의 피가 많은 성소를 만들어내고, 그리스도를 위해 많은 시련을 겪은 알바니아에 축복을 가져다주리라 확신합니다. 순교자들은 훌륭한 ‘희망의 증거자’로서, 우리에게 믿음을 굳건히 하고, 낙심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 전에 외쳤습니다.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임금이신 주 그리스도님, 알바니아와 교황님, 만세!” 이 말은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주교, 사제, 남녀 수도자,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교인에게도 격려의 말이 됩니다.
2016년에 복자로 시성된 알바니아 순교자들(출처=ACN 자료사진)
현재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 어쩌면 주교님의 어린 시절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그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죽음 이후에는 항상 부활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이겨내십니다. 어려움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없이 강하게 버티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승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삶의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용기와 기도와 사랑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ACN 후원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저는 진심을 담아 ACN의 모든 후원자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알바니아 교회의 이름으로, 그리고 주교회의 부회장으로서, 알바니아와 다른 많은 나라를 위해 여러분이 해주신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후원자분들의 도움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희망의 표징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어, 교회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위한 그들의 관대함에 풍성한 보상을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지원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