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오데사(Odessa)의 성모 승천 대성당은 격동적인 역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1853년 폴란드와 독일 신자들이 이 성전을 지었으나, 1935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폐쇄되었습니다. 건물은 처음에는 국제 클럽으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국가 박물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차 대전 중에는 교회에 반납되었지만, 오래가지 못 했습니다. 1949년 공산주의 정권은 건물은 물론, 토지까지 교회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였고, 교회는 체육관을 개조하여 성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임시적으로 칸막이를 치고 구역을 나누어 사용했을 뿐입니다. 압수된 곳들은 1991년 최종적으로 다시 교회로 반환되었지만, 건물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심지어 주변 토지는 여전히 돌려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국가가 개인으로부터 구매한 탓에 사적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부탁하여 토지를 다시 구입하려고 하지만 소유주들이 매우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실정입니다. 오데사-심페로폴리교구장 브로니스로 베르나츠키(Bronislaw Bernatsky) 주교님께서는 최근까지도 교회 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의 지원으로 주교님께서는 방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사실 본래 교회 소유였던 곳입니다.
교회는 성전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행히도 이제 더 이상 내부를 보면서 20세기의 끔찍한 정치적 비극을 떠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성전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 그곳에서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 미사를 함께 봉헌할 수가 있습니다.
성전 지붕이 심각히 파손된 상태로 반환되었는데, 자금이 넉넉지 않아 임시적으로만 보수한 채로 있다가 ACN의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보수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재 조사를 하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교회 탑의 나무 기둥은 다 썩었고, 주교관의 지붕은 내려앉았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젊은 시절 집단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연금으로 매달 약 65000원(50유로) 가량을 받으십니다. “제가 다른 교구로 이동할 때 연료 비용으로 한 번에 사용되고는 합니다.”라고 주교님께서는 말씀하시며 다음과 같이 덧붙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돈이 있기 때문에 연료비를 본당에서 받지 않아도 됩니다.”
주교님께서는 성전 복원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하셨습니다. ACN은 약 5250만 원(4만 유로)을 전달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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