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의 곁에 항상 있습니다.”
사진 속 청년 카타리나는 아드미라타 수녀님 그리고 만다 수녀님과 함께 지난 20년 간 추억이 담긴 앨범을 넘겨보고 있습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정든 보금자리와의 이별을 앞둔 카타리나에게는 기쁨과 함께 아픔도 생생해 집니다. 카타리나는 아기 예수의 종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이집트 하우스”의 큰 언니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보스니아 내전 난민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신경질환을 앓았기 때문에 사실상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카타리나와 그녀의 오빠, 스티포를 올바르게 양육할 수 없었던 부모는 아이들을 조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로하셨던 할머니에게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은 너무나도 벅찼지요.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을 데려왔어요.” 아드미라타 수녀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 카타리나는 겨우 두살배기였지만, 이제 어느덧 어엿한 19살이 되어 보육원 식구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타리나는 “여기 밖의 삶은 어떨지 생각하면 긴장도 조금 되어요.”라고 말합니다. 아드미라타 수녀님은 딸과 다름없는 카타리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내딛을 준비를 잘 해내고 있어요.”
아드미라타 루치치(Admirata Lučić) 수녀님은 아기 예수의 종 수녀회 사라예보 관구장이십니다.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수녀원에서는 보육원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녀원 복도에는 요셉 슈타들러(Josef Stadler) 대주교님의 실물크기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슈타들러 대주교님께서는 1890년 아기 예수의 종 수녀회를 설립하셨으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원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계셨던 수녀님들께서는 수녀원을 “이집트”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였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께서 헤로데 임금을 피해 이집트로 가신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수녀님들은 축복과 동시에 매서웠던 시절을 회상하곤 하십니다. 요셉 슈타들러 대주교님의 영성과 반대되는 증오와 파괴로 가득했던 시기도 존재했습니다. 1949년,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 아래 아기 예수의 종 수녀원은 강제로 국유화되었습니다. 모든 건물은 몰수되었고, 아이들은 다른 국가 기관으로 보내졌습니다. “당시 신앙은 교육적으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지요. 아이들은 더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라고 아드미라타 수녀님은 회고하십니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하자 세르비아군은 수녀원 건물과 시설을 폭격하여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당시 파괴된 건물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ACN에서 생계를 지원해 드렸던 아드미라타 수녀님과 12명의 동료 수녀님들께서는 종전 후 1999년, 보육원과 유치원을 설립하셨습니다. 실로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현재 55명의 아이들이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보육원에서는 19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또는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아이들은 다행히 이곳에서 따뜻한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의 아이들이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관이나 일반 가정의 아이들도 함께 배우고 있지요.”라고 아드미라타은 말씀하십니다.
카타리나의 오빠, 스피토는 이미 보육원 생활을 마친지 오래입니다.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혀 교회에서 진행하는 농업 프로젝트를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카타리나 역시 모든 정규교육 과정을 마치고 판매원 및 쇼윈도 디자이너로서 훈련받았습니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싶어요.” 카타리나에게는 분명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더 나아가 카타리나가 자취방을 얻을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실 분을 구하려 하며, “우리는 다 함께 방법을 찾을 거예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집트 하우스는 두 명의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주인공인 7세 소녀 멜리사와 8세 소년 오메르는 무슬림 남매입니다. 모친이 집을 떠나고, 부친은 다른 여성을 만나 홀로 남게 된 아이들은 부친에 의해 조부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은 할아버지는 결국 수녀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메르와 멜리사는 가톨릭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고, 나이에 맞는 정규교육을 받게 됩니다. 특이하지만 이슬람교와 정교회 아이들도 종종 이곳 이집트 하우스를 찾아오곤 합니다. 수녀님들은 설립자이신 요셉 슈타들러 대주교님의 뜻을 따라 살뜰히 아이들을 보살피십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대주교님을 “가난한 자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수녀님들도 결코 아이들을 어떤 교파에 따라 차별하며 대하지 않으십니다. 이튿날 수녀님들과 아이들은 사라예보의 예수 성심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사제 서품식에 참석합니다.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데, 사제수품 예정자 중 신학생 시절부터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만남을 이어오신 부제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는 아기 예수의 종 수녀회 수녀님들을 지원하며, 특히 수련수녀 양성을 돕고 있습니다. 지난해 ACN은 수녀원 건물 두 채의 보수 자금을 지원하였고, 지난 2014년 120년 만에 최악의 홍수로 일컬었던 보스니아 홍수 피해 재건에도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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